본문 바로가기 / Skip to main content

충북갤러리 / NEO art center

충북갤러리 로고 및 주요링크

본문 영역

Current

'Current' 컨텐츠

김지현 개인전 포스터 배경

컨텐츠 영역

김지현 개인전 상세보기

게시판 상세 내용

인사동 충북갤러리김지현 개인전
Artist' note

언어의 사용과 발달은 모든 인류의 소통과 과학, 문화라는 거대한 성을 구축하게 되었다. 무한 소통이 가능하다 믿으며 또한 그 언어로 모든 사물의 이름을 지어놓고 개념화, 상징화 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떤 대상을 볼 때는 그 이름에 한(限)하고 보편적 개념, 상징만으로 이해하고 판단하며 분별한다. 만물이 한순간도 고정된 항상성으로 머물지 않음에도...
이를 일컬어 마치 건축물을 조성하기 위한 ‘거푸집’에 불과하다 생각한다. 어떠한 ‘상(像)’도 언어밖에, 보편적 이념이나 개념 밖에, 그 실체가 존재하며 거푸집을 버리고 나면 거기에 시작이 있고, 기본이 있고, 본디가 있으며, 실체가 있다.
나는 이와같은 대상을 평면 위에 표현하기 위해 거푸집을 버리고 본디로 돌아가 기본이 되는 상과 색을 사용하여 회화화 한다.
본다는 현상은 눈을 통하여 듣는 것이다.
언어의 한정성을 벗어나 잠자고 있는 감각과 의식을 일으켜 세우면 거기에 본디의 아름다움이 존재할 것이다.

About

김지현이 이전에 추구하고 있던 작품세계는 현실과 이상, 의식과 무의식, 안과 밖 등 이분법적 분별력을 ‘날개’를 통해 해방하고자 하는 작업이었다면, ‘상’의 집착을 놓고 해체하는 요즘 작업은 마치 불교의 空한 이치를 이해하듯 작품으로 풀어가고 있다. 멈추어진 ‘상’의 거푸집을 버리고 나면 거기에 날 것 같은 움직이는 ‘상’과 ‘색’의 본디가 존재한다. 그 존재의 아름다움을 찾아 탐닉한다.

김지현은 작업 후반기에서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언어나 기타 보편적 가치 개념으로 한정화하고 규정지어 놓은 것들이기에 그것을 버리고 놓아 버리면 본디만이 남는다. 계절의 가을 끝에 나무가 마치 스스로 가지치기를 하듯 한평생 이어온 화업에 정화 작업을 한다. 본디를 찾아가는 아름다움에만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작업한 결과물을 이번 전시에 선보인다.

5년만에 이루어지는 개인전은 충북 출신 작가들을 위해 올해 개관한 ‘충북갤러리’에서 개최하게 됨을 매우 뜻 깊고 기쁘게 생각하고 있다. 이번 전시는 김지현의 새로운 예술세계를 엿볼수 있는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해 본다.

Exhibitions
1 / 24
무제(Untitled)
김지현, ‹무제(Untitled)›, 2023 227.3×181.8cm , 캔버스에 아크릴릭
2 / 24
무제(Untitled)
김지현, ‹무제(Untitled)›, 2023 227.3×181.8cm , 캔버스에 아크릴릭
3 / 24
무제(Untitled)
김지현, ‹무제(Untitled)›, 2023 227.3×181.8cm , 캔버스에 아크릴릭
4 / 24
무제(Untitled)
김지현, ‹무제(Untitled)›, 2023 162×130cm , 캔버스에 아크릴릭
5 / 24
무제(Untitled)
김지현, ‹무제(Untitled)›, 2023 162×130cm , 캔버스에 아크릴릭
6 / 24
무제(Untitled)
김지현, ‹무제(Untitled)›, 2023 162×130cm , 캔버스에 아크릴릭
7 / 24
무제(Untitled)
김지현, ‹무제(Untitled)›, 2022 162×130cm , 캔버스에 아크릴릭
8 / 24
무제(Untitled)
김지현, ‹무제(Untitled)›, 2023 162×130cm , 캔버스에 아크릴릭
9 / 24
무제(Untitled)
김지현, ‹무제(Untitled)›, 2023 116.8×91cm , 캔버스에 아크릴릭
10 / 24
무제(Untitled)
김지현, ‹무제(Untitled)›, 2023 116.8×91cm , 캔버스에 아크릴릭
11 / 24
무제(Untitled)
김지현, ‹무제(Untitled)›, 2023 116.8×91cm , 캔버스에 아크릴릭
12 / 24
무제(Untitled)
김지현, ‹무제(Untitled)›, 2023 116.8×91cm , 캔버스에 아크릴릭
13 / 24
무제(Untitled)
김지현, ‹무제(Untitled)›, 2023 90.9×72.7cm , 캔버스에 아크릴릭
14 / 24
무제(Untitled)
김지현, ‹무제(Untitled)›, 2023 90.9×72.7cm , 캔버스에 아크릴릭
15 / 24
무제(Untitled)
김지현, ‹무제(Untitled)›, 2022 90.9×72.7cm , 캔버스에 아크릴릭
16 / 24
무제(Untitled)
김지현, ‹무제(Untitled)›, 2022 90.9×72.7cm , 캔버스에 아크릴릭
17 / 24
무제(Untitled)
김지현, ‹무제(Untitled)›, 2023 91×65cm , 캔버스에 아크릴릭
18 / 24
무제(Untitled)
김지현, ‹무제(Untitled)›, 2022 72.7×60.6cm , 캔버스에 아크릴릭
19 / 24
무제(Untitled)
김지현, ‹무제(Untitled)›, 2022 72.7×60.6cm , 캔버스에 아크릴릭
20 / 24
무제(Untitled)
김지현, ‹무제(Untitled)›, 2023 72.7×50cm , 캔버스에 아크릴릭
21 / 24
무제(Untitled)
김지현, ‹무제(Untitled)›, 2021 120×120cm , 캔버스에 아크릴릭
22 / 24
무제(Untitled)
김지현, ‹무제(Untitled)›, 2021 120×120cm , 캔버스에 아크릴릭
23 / 24
무제(Untitled)
김지현, ‹무제(Untitled)›, 2022 90.9×145.5cm , 캔버스에 아크릴릭
24 / 24
무제(Untitled)
김지현, ‹무제(Untitled)›, 2023 53×45.5cm×20개 , 캔버스에 아크릴릭
Review

<형태와 색채가 빚어내는 사유 공간- 김지현의 근작들>


김지현 작가는 오랫동안 현실과 이상, 의식과 무의식 등 이분법적인 세계를 초월하려는 욕망을 날개 이미지로 구체화 시키고 형상화했다.
이 비유에서 이미 작가는 있는 대상을 그대로 옮긴다거나 묘사하는 것에 중심을 두지 않았음도 확인 해주고 있다.
이 사례만으로도 작가의 창작 의지 속에는 비유나 형상화가 예술의 중심일 수 있다는 사고가 충분히 고려되었음을 드러내고 있다.
그것이 한국화든, 서양화든 김지현 작가는 예술의 본질과 기능, 그것의 초월적 가능성에 남다르게 치열하게 주목 해왔다.

이 방법이 작가로서는 기본의 형식에 충실하되, 그것에 갇혀 있어서는 안 되고 넘어서야 한다는 지각과 깨달음이 강렬했음을 보여주는 증거가 되고 있다.
이러한 사색과 판단은 작가를 넘어 예술가적 인간이 가지고 있는 사유와 갈등의 세계에서 벗어나려는 강렬한 본능의 표현 그 자체로 해석된다.
작가가 작품 제목 앞에 'Fly'(날다)라는 단어를 꼭 붙였던 이유도 바로 그런 것 때문이었을 것임은 두말할 여지가 없다.

추계예대에서 교수로서 정년을 마친 이후 작가는 충북 문의면 두모리 산속 조용하고 고즈넉한 작업실에서 칩거했다.
그리고 거기서 엄청난 양의 작업을 성찰하며 다시 돌아보며 이념의 표현에 성찰하며 그것을 가다듬어 완성했다.
전통을 다시 보고 평면의 실험을 극대화 하면서 묘사와 표현에서 자유롭게 작가는 형태의 생략과 단순화,그리고 색채를 재 발견 한 것이다.
그 방대한 양의 작업들은 단순하게 대작에서 오는 스케일도 있지만, 그가 해왔던 작업에 관한 성찰과 모험, 변화였다. 그것은 김지현 개인으로서는 아주 파격적인 변혁이자 혁신의 아이콘이었다.
물론 이전에 존재하던 리얼리티는 줄어들고, 상대적으로 형태와 공간에 대한 해석과 간결한 색채의 구성이 압도적으로 돋보였다. 특히 형태의 단순화가 가장 눈길을 끌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근저에는 작가가 인식하는 한국화라는 답보적인 상황의 변화와 위기감이 중요하게 인지되었음을 말해주는 하나의 사례이다.

그는 오랫동안 답습해온 반복된 현재 한국화의 위기, 그리고 새로움과 가능성에 한국화가 어떻게 답하고 있는가를 향해 진지하게 물음을 가졌음이 명확하다.
작가는 그것을 그대로 놓아두고 싶지 않았던 것으로 이해된다.
거슬러보면 작가는 일찍이 타고난 뛰어난 손재주의 재능과 표현 욕구를 1985년부터 한지 부조 작업에 집중한 바 있었다.
그러다 2004년부터는 한지의 부조와 회화의 접목을 시도하면서 화폭의 형식을 변혁한 것이다. 바로 “Fly 그 지적인 관습의 해방'을 화면에 책 표지를 붙이고, 그 위에 한지 날개를 다는 형식이 그것이다.
이렇게 작가는 굳어지는 관습으로부터의 해방을 꿈꾸고 그것에서 탈피하여 새로운 영토에 도달하길 열망했고 목말라 했다.
왜냐하면 그러한 때 만이 비로소 진리에 눈뜨게 된다는 함축적인 의미와 메시지가 표현으로서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 공간과 메시지의 변화는 청주에 정착하면서 훨씬 더 구성적이고 사유의 상징처럼 타원형의 소묘적인 선을 끌어들였다.
이를테면 기하학적인 조형요소를 인용하며 주목한 것이다. 김지현의 가장 특징적인 화면의 특징은 이렇게 단호하면서 간략하게 그리고 구성적인 회화 스타일로 조형요소를 활용한다는 것이다.
즉 이상세계에 대한 갈망에서 어떤 진실을 발견한 듯 화폭에서 변혁의 표현 양식을 미련 없이 추구했다는 사실이 여기에 뒷받침 되고 있다.

그 결과 그의 공간은 극도로 단순한 여백을 구축하거나 아우르면서, 단순한 색채의 형태들이 화면을 지배하는 구조가 가능했고 그 목적에 도달했다.
특히 색채와 공간 그리고 수묵의 굵은 형태는 그 구성의 조화로움 중심에 가장 크게 기여하고 있는 회화적 요소이다.
김지현의 작품세계에 이 쿠테타 같은 파격적인 해체와 변모에 많은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지적한다.
그것은 현실과 이상, 의식과 무의식, 안과 밖 등 이분법적 분별력을 ‘날개’를 통해서 더욱 해방하고자 한 치열한 김지현식 고뇌의 표현형식이다고 말이다.
이것은 철학적으로는 즉 작업에서 이미지 ‘상’의 집착을 놓고 해체하는 마치 불교의 공(空)한 율법과 이치를 작품으로 즉자적으로 해석해낸 김지현식의 화법인 것이다.

궁극적으로 작가의 발언처럼 멈추어진 ‘상’의 거푸집을 버리고 나면 거기에 날 것 같은 움직이는 ‘상’과‘색’의 본디가 존재한다는 것이 작가의 사유이며 동시에 철학이며 예술인 것이다.
어쩌면 거기서 작가는 그 존재의 원천에 깔려있는 아름다움을 찾아 탐닉하는 것이 예술가의 사명이라고 믿고 있는 듯 하다.
이처럼 색과 형태의 조화와 구성으로 완성하려는 그 김지현의 예술적 이념 속에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언어나 보편적 가치 개념으로 규정지어 놓은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것을 버리고 놓아 버리면 본디만이 남는다는 작가의 삶에 철학적 깨달음과 무관하지 않다.
작가는 그것을 “계절의 가을 끝에 나무가 마치 스스로 가지치기를 하듯 한평생 이어온 화폭에 정화 작업”이라고 작업노트에서 고백 했다.

이제 작가는 구체적인 설명이나 미사여구보다는 본질을 관통하는 직관과 성찰이 작품에 녹아내리길 희망한다. 그리고 작가는 이것을 일컬어 마치 건축물을 위한 ‘거푸집’에도 비유 한 바 있다.
어떠한 ‘상(像)’도 언어밖에, 보편적 이념이나 개념 밖에, 그 실체가 존재하며 거푸집을 버리고 나면 거기에 시작이 있고, 기본이 있고, 본디가 있으며, 실체가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은 단순화한 곡면의 선들은 모두 생략하거나 절개되어 단순한 도상과 빈 공간의 조화로서 작품 전체에 균형 있게 등장한다.

나는 이것이 김지현 회화의 또 다른 가능성을 위한 강력한 나침판으로서 역할을 할 것이며 가치 있는 의지로 평가한다.
과감하게 위태로울 정도로 절개해 놓은 색채와 공간의 분할, 그리고 질서 정연하게 그어진 선들은 경직성을 풍길 정도로 공간에서 강한 침투와 확장을 공유하게 만든다.
정연하게 내려 그은 선들이 빚어내는 합창 같은 그의 선 긋기, 거침없이 분방한 선과 색채의 결합은 철저하게 생각한 이후에 나오는 선들임을 강조한다.
그래서 거칠게 삐친 붓의 역동성과 색채의 하모니는 깊게 사유한 화가의 초월적 인식을 우리로 하여금 체험하게 한다.
이것이야말로 김지현만의 기법과 형식으로 강렬한 흔적을 화폭에 남기고 그 색채 덩어리로 절묘하게 합쳐 조형성을 지닌 생명체로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자연에서 얻은 그 형태와 빛깔들의 특징을 단순화하는 것으로 이제 작가는 몬드리앙의 차가운 추상과 칸딘스키의 뜨거운 추상의 경계에 서 있다.
형태의 단순화와 색상을 조화롭게 풀어내는 그 방식은 분명 새롭기도 하고 현대미술의 전망을 밝게 하며 동시에 이것은 그에게 주어진 하나의 숙제일 수도 있다.
그러나 명확한 것은 한국화의 어느 그림에서도 보기 어려운 공간과 형태의 특징을 강조하고 생략하는 테크닉과 방법은 분명 김지현만의 중요한 무기임이 틀림없다.
무엇보다 극도로 절제된 색상과 모양으로 공간을 잘라내는 화풍과 기법은 김지현 작가가 오랫동안 화두로 삼았던 부분이어서 보다 희망적이고 충분히 낙관적이다.

대상의 본질을 드러내기 위해 거푸집을 버리고 본디로 돌아가려는 이 최근작들의 전리품은 그래서 현대미술의 흐름 속에서 모두에게 중요하고 가치가 있다.
우리가 이번 신작전시에서 그만의 기하학적인 공간의 해석, 그 절제된 언어가 주는 회화의 아름다움, 그 형식들이 빚어내는 단순미. 바로 여기에 김지현의 새롭고 철학적인 본질로의 회귀 향한 그 예술세계를 우리가 기대하는 가장 큰 이유이다.

김종근 (미술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