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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동 충북갤러리관수도-찌
About

물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우리 생명의 근원이고 기초적인 물질로 평온한 안식처 이기도하다. 그리고 물은 사람들의 욕망을 표현하는 은어적 표현으로도 사용된다. 또한 물은 죽음, 이별을 상징하는 등 긍정적 이미지 혹은 부정적 이미지가 공존하였다. 그리고 더러운 것을 깨끗이 하는 속성을 지니므로 정화의 능력을 가졌다. 그래서 신은 노아의 방주를 통해 물로서 세상을 정화 시키고자 하였던 것이 아닐까? 또한 정화를 통해 새로운 세상으로 회복 시키고자 하였을 지도 모른다. 또한 풍수지리에서 물은 재물과 관련이 있어 물이 있는 곳에서 사람이 모여 중심지가 되고 경제 활동이 활성화되었다. 그리고 이 동네는 물이 좋고 이 동네는 물이 나빠 라는등의 비유적 표현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이렇듯 물은 다양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우리 인간과 아주 밀접한 관계 속에 인간들은 물을 통해 치유 받고 물을 통해 욕망을 얻고자 물속을 헤메이는 존재로 살아 간다. 이러한 광범위한 물의 의미 속에 세상이라는 공간 속에 작자는 찌를 던져 넣었다.

Exhibi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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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수도-찌
임민수, ‹관수도-찌›, 2023 218.5x78.5cm , 파스텔.콩테.수용성물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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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수도-찌
임민수, ‹관수도-찌›, 2023 109x156cm , 흑연.콩테.수용성물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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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수도-찌
임민수, ‹관수도-찌›, 2023 109x156cm , 파스텔.호분.수용성물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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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수도-찌
임민수, ‹관수도-찌›, 2023 109 x 78cm , 파스텔.콩테.수용성물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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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수도-찌
임민수, ‹관수도-찌›, 2023 218 x 78cm , 흑연.콩테.호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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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수도-찌
임민수, ‹관수도-찌›, 2023 109x468cm , 흑연.콩테.호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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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수도-찌0.5호
임민수, ‹관수도-찌0.5호›, 2023 109x78cm , 흑연.콩테.수용성물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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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수도-찌0.8호
임민수, ‹관수도-찌0.8호›, 2023 99x78cm , 흑연.콩테.수용성물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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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수도-찌0.8호
임민수, ‹관수도-찌0.8호›, 2023 99x78cm , 흑연.콩테.수용성물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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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수도-찌1호
임민수, ‹관수도-찌1호›, 2022 109x78cm , 흑연.콩테.호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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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수도-찌1호
임민수, ‹관수도-찌1호›, 2023 109x78cm , 흑연.콩테.호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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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수도-찌1호
임민수, ‹관수도-찌1호›, 2023 103x146cm , 흑연.콩테.수용성물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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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수도-찌1호
임민수, ‹관수도-찌1호›, 2023 109 x 178cm , 흑연.콩테.수용성물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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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수도-찌2호
임민수, ‹관수도-찌2호›, 2023 109x78cm , 파스텔.콩테.수용성물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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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수도-찌2호
임민수, ‹관수도-찌2호›, 2023 109x78cm , 흑연.콩테.호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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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수도-찌3호
임민수, ‹관수도-찌3호›, 2022 218.5 x 78.5cm , 흑연.콩테.수용성물감
Review

“바라보기, 더 이상 자신이 아닐 때까지 바라보기”
(프랑스 이론가 마르틴 졸리 Martine Joly)


임민수 작품 <관수도-찌>에 대하여


잔잔한 수면, 혹은 소용돌이치는 표면. 그 위에 드리워진 나뭇가지. 빗방울을 고스란히 만나고 있는 물보라, 어쩌면 햇빛에 부서지는 물결. 칠흑 같은, 때론 눈부시게 푸른 물.
임민수 작품의 물이 있는 풍경이다.
다만 일반적인 풍경화와 다른 점은 물이라는 매체와 함께 중요한 요소로 낚시의 ‘찌’가 등장한다는 점이다.
작가가 형상화한 사각의 따블로는 사실 명상과 사색의 장소로 조형화된 그만의 낚시터이다.

프랑스 학자 바슐라르(Gaston Bachelard)가 상상의 특수한 형태를 불, 공기, 흙, 물 제 4원소에 재결합시키며 환기시킨 바 있듯이, 물은 씨앗을 발아시키며 생명을 분출하게 하는 요인 즉 태어나고 성장하게 하는 생명의 마티에르로써 모성, 여성을 상징한다. 또한 ‘다른 세계’, 신비, 더 나아가 그 속에서 숨쉴 수 없는 살해적 위험을 상정한다. 그 외에는 더러운 것을 깨끗하게 하는 정화의 속성 또한 가지고 있다.
작가의 작품 속 물이라는 매체는 이처럼 여러 가지 긍정적 이미지와 부정적 이미지가 공존하는 ‘이미지의 저장소’(Bachelard)로써 관객에게 무한한 상상의 공간을 제공한다.
그리고 작가는 이러한 광범위한 물이라는 은유의 세계 속에 찌를 던져 넣었다. 태어나고 자라나며 욕망하며 치유 받고 때로는 절망하고 죽어가는… 끊임없이 헤매야 하는 물 위에, 그 세상에 던져진 찌.
찌는 무게나 깊이에 따라, 어종이나 목표에 따라 그 형태를 달리한다. 던지는 이의 목적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원하는 자리에 부유한다. 또한 드넓은 물 가운데 던져진 찌는 위치를 확인하는 중요한 표식이 된다. 찌를 잃어버리는 순간 우리는 목적과 대상을 잃고 헤매게 된다. 무지한 삶의 어느 순간 욕망이나 희망을 잃고 좌초되지 않기 위한 표시인 것이다.

더불어 임민수 작가의 작업 과정 또한 지난한 낚시의 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
작가의 주된 그림 재료는 흑연 가루, 콩테, 호분이다. 이러한 혼합재료를 활용하여 땅속 깊은 곳에서 채취되는 광물 흑연처럼 오래된 기억의 저편과도 같은, 흑백의 필름 같은 느낌을 표현한다. 잡힐 듯, 말 듯 한 먹빛 물의 표면에서 혼탁한 미지의 세계를 표현하고 이상과 현실이 공존하는 몽환적인 심상을 연출하기도 한다. 동양화에서 먹색은 질료이기보다는 정신적인 사고의 바탕인 것처럼 말이다.
작업 과정을 들여다보면 호분으로 바탕칠을 한 후 흑연가루를 고착시키는 작업, 밑그림 작업, 그 위에 파스텔 등 기타 재료를 뿌리기, 번지기 등등, 작가는 우연적 효과들을 장시간 수습해서 완성작을 만들어간다.
작가는 무엇을 하는지 알고 있다. 그러나 사실 무엇이 만들어질는지 알지 못한다. 다만 기다릴 뿐이다.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도 싸이 톰블리(C.Y. Twombly)를 비평하면서 톰블리의 창조적 능력은 바로 이와 같은 ‘우연의 기쁨’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즐거운 우연의 소산을 얻기 위해 작가는 그만의 낚시터에서 긴 기다림을 감내한다.
마침내. 신경증적인 회오리, 묵히고 삭힌 감성과 오감이 맺히는 먹과 색채의 교류......
월척이다!
이제, 관객은 광활한 세상, 물 위의 찌를 그 미세한 움직임을 오롯이 온몸으로 지켜본다. 던져 놓은 미끼를 물어 찾아올 찰라의 순간을 낚을 때까지. 기다림의 초조와 긴장 속에 찌를 주시하는 우리는 입질을 기다리는 구도자적 존재가 된다.
그러다 그 어느 바라보기의 끝에 낚시 바늘로 찔린 듯한 표식은 더 깊은 곳으로 흘러가 관객에게 찔린 듯한 상처와 같은 여운, 푼크툼(punctum, 롤랑 바르트)를 남기게 될지도 모른다.

언제인가 중국의 어느 황제 한 분이 궁정 수석 화가에게, 그가 궁궐 침실에 그렸던 벽화를 당장 지워버리라고 하명했다. 그 그림에서 들려오는 물소리에 도무지 잠을 이룰 수가 없었음으로. (레지스 드브레의 <이미지의 삶과 죽음> 서문 중에서)
이제 작가의 <관수도>에서 들려오는 그 물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찌를 바라보자. 심오한 먹빛 물결, 광활한 내면의 심연 속에 좌초되지 않기를 바라며 입질을 기다려본다.
무엇을... 낚게 될 것인가……



평론, 임연 (조형예술학) -